아키텍처는 전략이다

김성근 중앙대 교수, 전자정부특별위원회 위원

세상의 모든 복잡한 것은 만들어지기 전에 설계도가 먼저 작성된다.

고층빌딩이 그렇고, 비행기와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실제 만들기 전에, 복잡한 이 실체에 없어서는 안 될 기능 또는 부품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는 것인지, 어떤 한 기능이 연동되어야할 다른 기능과 제대로 상호 연결되어 있는지, 어떤 장애나 하자가 생겼을 때 해당 부분만 교체하고 보완하는 게 용이하게 되어 있는 지 등을 확인해야 하는 게 필수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조직은 어떠한가? 어느 누구도 조직이 복잡한 실체라는 점에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실제 기업 또는 공공기관은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은 서로 매우 복잡하게 얽혀있다. 어떤 필요에 의해 특정 부분에 변화를 주고 싶어도 연계된 다른 부분으로 인해 손대기조차 어려운 형편이다. 어떻게 보면, 조직은 앞에서 언급한 빌딩이나 자동차와 같은 물체보다 훨씬 더 복잡한, 살아 있는 생명체에 가깝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조직은 날로 그 복잡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경제에 따른 경쟁 심화, 바젤Ⅱ와 같은 규제 강화, 시장 및 고객 욕구의 변화, 기술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오늘날의 조직은 예전보다 훨씬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복잡해져 가는 조직을 효과적으로 경영하기 위해선 설계도가 더욱 필요하다.

이와 같은 설계도를 보통 아키텍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아키텍처에는 묘사 수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올 수 있다. 즉, 건축에서 조감도, 개념설계도, 설계도, 시방서 등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작성되는 것과 같이.

조직을 위한 설계도를 오늘날 enterprise architecture라고 부른다. 여기에는 조직을 위한 구성요소인 조직목표, 전략, 핵심역량, 업무와 기능, 조직구조, 정보, 투자, IT 자원 등에 대한 정의, 이들 요소간의 상호관계, 그리고 고객과 시장의 요구에 대한 조직의 변환 계획 등이 포함된다. 일부에서는 이를 IT 아키텍처라고 부르기도 하나 이는 잘못된 용어이다. IT가 조직의 주요한 구성요소 중의 하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게 목표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enterprise architecture의 있고 없음이 어떤 차이를 나게 해줄까? 우선, 아키텍처 없는 조직은 단편적(piecemeal) 접근에 주로 의존한다. 즉, 경영진은 전략적 방향을 수립하고, IT조직은 이를 토대로 일련의 IT 기반 해결책을 제시한 후, 향후 이 해결책의 구현을 위해 응용시스템, 자료, 기술 인프라 등을 구축하여 제공하는 접근이다. 여러 관점에서 이런 접근이 잘못될 수 있다. 전략 그 자체가 구체적인 행동에 옮겨질 만큼 명쾌하게 정의되지 않을 수 있다. 설령 전략이 분명하다 하더라도 해결책이 개별적인 시스템으로 제공되고 이들 개별 시스템은 기반기술이 서로 다를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IT 시스템은 최근의 특정 전략 방안에 종속되어 있으므로 새로운 전략이 필요할 시 이 IT는 변환의 촉진제가 아니라 오히려 변환의 걸림돌로 작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아키텍처를 근간으로 경영하는 조직은 어떤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최근 MIT 연구는 명확한 아키텍처를 수립하고 이를 토대로 경영하는 조직의 경우 수익성이 높고, 시장대응 속도가 빠르고, IT 비용이 크게 감소되는 현상이 뚜렷함을 입증해주고 있다. 아울러 최근 3년내 개발된 신제품 매출액 비중이 그렇지 않은 기업보다 훨씬 높음을 발견하였다. 바로 더 유연하고 민첩한 조직이 되었다는 점이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효과가 일시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지속된다는 것이다. 아키텍처의 있고 없음은 마치 전략적 방향만 있는 조직과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기반이 마련되어 있는 조직과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중요한 아키텍처 노력은 누가, 어떤 관점에서 수행되어야 할까? 전략수립이 CEO 등과 같은 경영자의 고유 책무이듯이 이 아키텍처 노력도 전략적 활동의 일부이며 경영자의 몫이다. 현재 국내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당수의 아키텍처 노력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아키텍처의 본질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IT가 중심이 되고 IT 부서가 주도하는 경우 아키텍처의 효과를 얻기란 그만큼 어려워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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