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SA가 알아주는 우주과학자 정재훈 박사d

NASA가 알아주는 우주과학자 정재훈 박사

그의 삶은 겸손한 복음전도자
 
조명환
 

 
▲ NASA가 알아주는 우주과학자 정재훈 박사     ©조명환

정재훈 박사는 세계가 알아주는 우주 과학자다. 미 우주항공국(NASA)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NASA로부터 ‘기적의 사나이,’ 즉 Miracle Maker란 말을 들을 정도라면 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준다.
 
그 가 유명해진 것은 지난 1986년 미국우주산업의 대명사격인 챌린저호 우주왕복선이 발사 1분 12초 만에 공중 폭발하여 초등학교교사를 포함, 우주승무원 7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을 때였다. 그때 미 우주 개발은 일대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미국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때 이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한 열 개발 장치에 성공, NASA 뿐 아니라 미국의 자존심을 지켜 준 장본인이 바로 정재훈 박사.
 
2003년에는 7명의 우주비행사가 목숨을 잃는 컬럼비아 호 사고가 발생했다. 정 박사는 이때의 사고원인을 연구하여 Anti icing heating system 개발을 시작, 그해 12월에 완성시켰다. 그러나 제3안으로 밖에 채택 받지 못하다가 결국 2004년 9월 최종안으로 채택되어 2005년에 첫 생산품을 전달했다. 이렇게 하여 결국 2005년 7월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의 성공적인 발사의 공로자가 된 것이다.
 
“30년 전 1977년 미국으로 이민 온 이후로 줄 곳 테이코(Tayco) 우주개발사에서 우주개발사업을 주도해 왔습니다. 자유진영에서 쏘아 올리는 인공위성의 95%는 모두 저희가 만드는 로켓 엔진 열조절장치가 장착되어야만 발사할 수 있어요. 2004년 화성표면에 착륙한 쌍둥이 로봇에도 저희가 개발한 1,562 종류이상의 가열장치와 신경조직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또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사고 이후부터 우주 왕복선이 발사 될 때마다 저희가 개발한 시스템을 장착하고서야 발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처럼 우주 과학 분야에서 인정받는 과학자이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찾아온 기적은 아니었다. 평범한 1세 이미자와 별로 다른 게 없었던 그이 미국 이민. 특별한 게 있다면 자신의 모든 성공을 하나님의 은혜로 돌리는 그의 아름다운 신앙과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일해야 더 많은 것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일에 대한 겸손한 근면성 때문이었다.
 
78년도부터 현재 일하는 테이코 사의 제도사로 입사한 그는 시간당 4달러 50센트를 받는 말단 직원이었다. 3년 만에 치프 엔지니어가 되었고, 7년 만에 부사장, 20년 만에 CEO로 변신한 것이다. 창업자인 금년 77세의 테일러 씨는 기꺼이 그에게 사장의 자리를 물려주고 2선으로 물러섰다. 말단에서 사장이 되는 그의 출세가도는 발로 뛰는 그의 성실함 때문이었다. 지금도 160여명 직원가운데 마케팅의 80%는 자신이 도맡아서 한다는 것이다.
 
서울사대 부고,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한때 무역회사 상무로도 일 했던 그는 고등학교 일기장에 써 놓았던 자신의 장래 포부, “세계적인 과학자가 되고 싶다. 인류의 기쁨을 위해 일하자”는 막연한 소원을 품고 1977년 미국 이민 길에 오른 것이다. 테이코에 들어가 말단으로 일하면서 저녁에는 캘스테이트 롱비치 대학에 들어가 기계 재료 공학으로 석사, UC 어바인에 들어가 우주열 공학으로 10여년에 걸쳐 Ph.D. 학위를 받기도 했다.
 
미 국에 도착하면서 그가 출석한 교회는 오렌지 카운티 한인교회. 정도량 목사가 재임할 시 39세 때 시무장로가 되었고 그 후 신용규 담임목사의 권면을 받아 신학 공부를 시작, 에반겔리아 신학대학(당시 학장: 고 이근삼 박사)에서 목회학 석사학위(M. Div.)도 받았다.
 
그렇기에 그는 목사 안수만 받지 않았을 뿐 이지 직업은 우주 과학자, 하는 일은 목사에 가깝다. 왜냐하면 지금도 자비량 부흥사로 부르는 곳만 있다면 찾아가서 부인과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 인 정정숙 씨는 이대 신문방송학과 출신. 가든 그로브 도서관에서 사서로 15년 근속하기도 했던 부인은 남편과 함께 에반겔리아 대학원에 들어가 함께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학 석사를 받기도 했다. 정 박사는 1999년부터 그 에반겔리아 대학에서 ‘종교와 과학’이란 과목의 교수로도 활동 했다.
 
정 박사의 큰딸 줄리 씨는 미 국무성 외교관으로, 작은딸 코니는 미 주류 방송국 샌프란시스코 KCBS의 뉴스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 중. “저는 어느 교회 초청을 받아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면 꼭 아내와 함께 강단에 섭니다. 제가 반을 하고 아내가 반을 말씀하지요. 부흥강사라 해서 제게 그냥 밥만 사주시면 됩니다. 저는 비행기 표랑 호텔이랑은 다 알아서 내가 하고 렌트카를 해서 예배시간에 나타나거든요. 바쁜 목사님들 시간을 뺏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의 부흥회와 관련된 에피소드 2가지. 캐나다 빅토리아의 한 한인교회에서 집회 마지막 날, 유학생활로 방황하던 끝에 유명한 우주 과학자가 인도하는 부흥회가 열린다 해서 찾아온 한 여자 유학생이 있었다고 한다. 그날 저녁 정 박사의 설교를 듣고 도전을 받았다며 한국으로 돌아 가는대로 이메일을 주겠다고 했다. 그 후 그 여학생은 부산지역 어느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고, 유학시절의 방황을 청산하고 지금은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까지 전도해서 교회에 다니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왔다고 한다.
 
이처럼 한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최선의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정 박사는 필자와 점심자리에서 그 유학생과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마침내 그가 주님을 영접하게 된 드라마 같은 스토리를 회상하면서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처럼 자신의 간증과 말씀을 통해 한 영혼이 변화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성공을 이끌어 주신 하나님 뜻이요, 그 분을 영화롭게 하는 길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
 
한번은 자신의 집회에 참석한 한 대여섯 살 난 여자 어린이가 맨 앞자리에 앉아 설교가 끝날 때 마다 은혜 받았습니다, 은혜 받았습니다 라고 인사 하더라는 것. 나중에 “엄마는 오셨는데 아버지는 어디 계시니?” 라고 물었더니 대답을 못하더라는 것. 알고 보니 그 아이의 아버지는 불신자였다. 그 은혜 받았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기에 “너는 이제부터 은혜야!” 라고 별명을 지어주고 그 이후 아이의 아버지와 오랫동안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고 한다. “당신의 그 예쁜 딸이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데 아버지인 당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라고 권면하는 수많은 이메일 끝에 마침내 그 은혜의 아버지가 교회 출석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는 사건을 만날 때 마다 그것이 바로 기적이라며 자신을 통해 수많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고 겸손해 했다.
 
회 사 일로 바쁜 일정을 보내야 하는 그 이지만 매일 새벽 4시 반 부터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것은 일과의 출발이다. 그러니까 하루의 시작인 새벽을 주님께 바치고 새벽에 깨닫고, 스스로의 새벽을 깨우되 그 새벽에 경험하는 능력으로 그는 회사의 비전을 꿈꾸고 한 영혼에 대한 사랑과 열정도 키워 나간다.
 
이처럼 철저한 하나님 중심 세계관을 역설하는 정 박사는 북한에서 태어나 피난길에 남한에 와서 살다가 미국까지 온 것부터가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라고 말한다. 그는 외할머니가 1890년대에 미국선교사로 부터 예수님을 영접하여 초대 크리스천 가정이 된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다.
 
그의 기도 제목은 참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것, 그리고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진심으로 시간과 정성을 다해 남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봉사”라는 정 박사는 롱비치 한인상공회의소를 창립하여 회장으로 봉사하면서 이 지역의 갱단을 선도하는 일이 중요함을 발견했다. 또 주류사회 인사들 30여명과 함께 발족시킨 롱비치 커뮤니티 파트너십이란 봉사단체에 참여하여 이 지역의 어두운 구석을 두루 찾아다니며 오늘 날까지 봉사하고 있다 .
 
그는 또 가정의 중요성을 누구 못지않게 강조하는 사람. “가정이 사랑의 띠로 단단히 묶어져 있을 때 기업도 탄탄해진다”는 그는 아내를 “하나님 다음으로 존경 한다” 고 말한다. 대학시절 미팅에서 만난 ‘오드리 햅번’(그는 아내를 그렇게 부른다)을 아내로 맞아 평생 신앙의 동지로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그는 “아내가 뒤에서 항상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힘이 솟아 난다”고 말했다.
 
정 박사는 중요한 우주 개발 연구뿐만 아니라 사소한 삶 속에서 까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와 은혜를 발견하고 감사하고 있다.“과학이란 무엇입니까? 피조물이 만들어 낸 학문적 이론에 불과한 것이죠. 저는 다만 그 과학을 통하여 기업을 경영하며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일조할 수 있는 기회를 내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더욱 엎드릴 뿐입니다.”(정 박사의 전화는 714-952-2240, 이메일: JC@Taycoeng.com)
 

뉴스파워 제휴사 CBS 미국 로스앤젤레스=조명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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